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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2-05-2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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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의 지명 유래를 아십니까?

기사입력 2020-05-0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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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유지도

 

 

 

장유는 오랜 역사의 향기가 깃들어 있는 고장이다. 수가리 가동마을과 유하리 하손마을에 있는 패총은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 초기 선인들의 집터였고, 무계리 광석암은 청동기시대 남방식 지석표(고인돌)이다.

 

오래전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의 허보욱이 허황후를 따라 이 나라에 와서 이곳 장유에 절을 세우고 오랫동안 머물러 돌아가지 않다가 입적하여 후세에 장유화상이라 부르게 되었다.

 

 

장유산(지금의 태정산) 부근에 마을이 형성되자 장유촌이라는 지명이 생겼고 이곳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장유사라 하였다. ‘유하촌은 김해부의 서쪽에 있는 들 부근에 형성된 마을에서 유등야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의 삼문리 능동 마을은 가락국시대 임금의 능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며 젤미마을 아파트 지역 일부는 신라말기부터 향, , 부곡이라는 특수 부락의 하나인 제을미(젤미) 향이라고 불렀던 곳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제을미향’, ‘장유촌’, ‘유하촌의 세 마을로 형성되었다. 그 후 1810(순조10)유하면으로 고쳤다가 1879(고종16)에 다시 유등야면으로 고치고 1885(고종22)장유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888(고종25)에는 장유면’ 8개리(부곡, 유하, 내덕, 무계, 대청, 삼문, 신문, 관동)수남면’ 4개 리 (율하, 장유, 응달, 수가)로 분리되었다가 다시 1914년에 수남면이 장유면에 합병되었다. 그 후에 부산경남공동경마장을 조성하면서 2000112일 장유면 수가리 가동마을은 부산시 강서구 범방동에 편입되고, 부산시 강서구 범방동 장전마을은 장유면에 편입되어 지금의 장유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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