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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길 세무사 특별인터뷰]“어두운 공동묘지에서 인생을 배우다.”

‘화제의 집안’ 국가고시 4명 합격

기사입력 2021-04-0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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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해야 하나.”

부모라면 아이들을 키우면서 누구나 하는 고민일 것이다. 부모 세대는 암기식,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부모가 받았던 교육 방식과 자식이 받아야 할 교육 방식은 너무나 다르다. 그럼 어떻게 자녀를 교육해야 할까?

올해 제57회 세무사 시험에 막내아들이 합격하면서 세무사인 아버지, 큰딸은 언론고시, 작은딸 48세무사 자격시험 합격으로 한집안에 국가고시 4명이 배출되었다. 본지는 서종길 세무회계 사무실을 방문하여 서종길 세무사의 특별한 자녀 교육법’ 그 특별한 이야기를 듣고자 그를 만나보았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김해 부원동에서 25년째 세무사를 하고 있는 서종길입니다.

 

Q 태어나고 자란 고향, 집안환경과 학교생활부터 세무사가 되기까지 궁금합니다.

 전남 나주의 시골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나주 봉황초, 봉황중을 졸업하고 광주공고를 입학했지만, 광주공고 1학년에 다니던 중에 자퇴 했죠. 학교 성적은 반에서 66명 중 2등을 했는데, 기계 만지는 건 반에서 꼴등이었어요. 적성에 너무 맞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자퇴서를 내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1년 만에 합격하고, 공무원 준비를 해서 15년간 국세청에서 근무를 했어요.

국세청에 다니던 중에 미래를 위해 좀 더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나이 36살에 안정적인 직업인 세무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죠. 아내 몰래 사표를 내고 서울 고시원으로 들어갔어요. 매일 하루에 14시간씩 공부를 했어요.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책만 봤죠. 그렇게 서울 고시원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낸 지 1년 반 만에 세무사 자격시험 합격증을 거머쥐었어요.

그때가 막내가 갓 돌이 지났을 무렵이었는데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아내와 가족들에게 참 미안했어요. 아빠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키운 아내가 고생이 많았죠.

그렇게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고 1995년 지금 이 자리, 김해 부원동에 사무실을 개업했어요. 지금이야 세무사가 많지만, 그때는 김해지역 세무사가 딱 3명일 때였는데 저희는 직원이 13명이었어요.

                 ▲ 3년전 가족사진

 

Q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서울에 있는 큰딸, 김해에 사는 작은딸, 그리고 이번에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막내아들, 이렇게 12녀입니다.

 

Q 어떻게 자녀 세 명 모두 국가고시에 합격했나?

 첫째 큰딸은 학창 시절부터 아나운서의 꿈을 키워 지금은 **신문사에 기자로 있고 둘째 작은딸은 제48회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여 김해세무서에 근무, 막내아들은 올해 제57회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어요.

큰딸은 김해여고를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을 가서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어요. 어려서부터 주관이 뚜렷한 아이라서 방송기자의 꿈을 키웠고 지금은 **신문사에 수석 합격하여 청와대 출입 기자로 있어요. 이달의 기자상을 6번이나 받았고, 2018년 10.4 남북공동선언 10주년에  국회출입기자로 북한을 다녀왔어요. 집에서는 천상 맏이로 책임감도 있고 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준 저에게도 항상 든든할 딸이에요.

작은딸은 중2 때까지 현대무용을 하다가 그만두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 했어요. 무용을 하다가 뒤늦게 공부를 했던 탓에 다른 과목은 다 1등급이었는데 수학이 5등급이었어요. 또래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노력했죠. **대 경영학과를 나와서 제 권유로 세무사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했고, 지금은 김해 세무서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자기 고집도 있고 개성이 강한 아이죠.

막내아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는 안 하고 가수가 되겠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춤추러 다녔어요. 서울까지 노래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었죠. 그러다 지방에 대학을 가서 1학년 때 휴학하고 군대에 갔어요. 2년 뒤 제대한 아들에게 제가 너의 미래를 위해 아버지처럼 세무사가 되는 건 어떻겠냐며 권유했어요. 군대 제대하고부터 무려 5년 동안 서울고시원에서 세무사시험 공부를 했어요. 학창 시절 가수가 되겠다며 춤추고 놀던 아이였는데, 올해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으니, 무에서 유를 창조한 거죠. 하하~

 

Q ‘서가네 교육법이 있나? 아버지가 평소 자녀교육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가?

 2002년도에 저에게 매우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죽을 각오를 하고 무작정 공동묘지를 찾았어요. 저의 장모님 묘지였죠. 울고불고 소리도 질러보고 죽을 마음을 먹었는데 공동묘지에 비석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때 ! 내가 저렇게 죽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산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 살면, 뭔들 못할까~”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데 가족들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살아보자.” 다짐을 하고 공동묘지를 내려왔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조언을 할 때마다 제가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기회를 주었고요. 직접 경험해 보고 진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조언을 많이 했죠. 지금도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함께 의논하곤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의 조언을 잘 따라 준 것도 합격요인이라 할 수 있겠네요.

 

Q 자녀 교육에 부인의 역할이 컸을 것 같다. 자녀들에게 엄마는 어땠나?

 아내가 참 고생이 많았죠. 제가 세무사 준비한다고 몇 년간 서울 생활을 했죠, 직장생활에, 정치 활동까지 한다고, 여러 가지로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 챙기는 건 오로지 아내 몫이었어요. 아내가 아이들을 묵묵히 믿어주고, 아이들이 무엇인가 흥미와 소질이 보이면 적극적으로 기회를 주어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했어요. 때론 엄하게, 때론 친구처럼 알뜰히 뒷바라지 했어요. 지금도 엄마와 장성한 아이들이 매일매일 전화해서 친구처럼 수다 삼매경이예요.

 

Q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겪었던 힘든 점이나 에피소드가 있었나?

 저는 아이들에게 강심장을 갖고 살게 하고 싶었어요. 공부든 뭐든 사람은 굳은 각오와 강단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아이들 초등학교 때 가까운 공동묘지에 데려가곤 했어요.

어느 날 아이들 셋과 손을 잡고 공동묘지에 올라가서는 한 명씩 차에 가서 핸드폰을 가져오라고 보냈어요. 그리곤 우리 셋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었어요. 큰딸이 무서워서 울면서 벌벌 떨었죠. 둘째 딸은 역시나 강단이 있던 아이라 묘에 누워서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요. 이런 누나들을 보며 자긴 절대 안 울겠다던 막내아들은 울고불고 팔딱팔딱 뛰더라고요.

그렇게 하루는 큰딸을, 그다음 날엔 작은딸을, 마지막엔 막내아들까지.. 그러고 나서 전 아이들에게 애들아~ 죽음이 무섭고 두려우냐? 그렇다면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무엇이든 죽을힘을 다해 살아라. 너희는 부모도 있고 건강하게 살아있지 않느냐. 살아있는 것에 항상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야만 한다.”며 얘기를 해줬어요.

그래서인지 우리집 아이들은 겁이 없어요. 밖에 나가서도 나는 공동묘지에 혼자도 있어 봤어. 난 웬만한 건 겁 하나도 안 나!”하며 얘길 한다고 하더라고요. 의지가 약한 아이들이 있다면 한번 해보세요.

 

Q 준용 씨가 이번에 세무사 자격시험에 최종 합격했다고 들었다. 아들의 합격 소식에 특별히 기뻐했다고 하는데 이유가 있나?

 식구가 모두 울었어요. 합격자 발표날, 오전 9시 발표였는데 910분까지 기다려보고 연락이 없으면 떨어진거다, 생각하고 있는데 905분쯤 전화가 왔더라구요. 수화기 너머로 준용이가 울먹이면서 합격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내와 저, 누나들 모두 다 같이 울었어요.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자식 중 마지막 한 녀석이 저에겐 마지막 남은 숙제였거든요.

준용이에게아들아~ 그동안 고생 많았다. 앞으로는 자부심을 갖고 제2의 인생을 살아라. 항상 정직하게 살고 남을 위해 베풀며 살아라. 장하다 우리 아들~”라고 말해 줬어요.

부모가 자녀의 공부에 매달리는 것은 결국은 자녀들이 잘 먹고 잘살게끔 하려는 것일 겁니다. 두 딸이 자라 번듯하게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준용이는 일명 백수였어요. 백수에서 세무사로 인생 역전했죠.
 

Q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세무사 공부한다고 몇 년, 정치 생활한다고 몇 년을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30년간 우리 가족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우리 아내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요. 앞으로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자랑스러운 우리 큰딸 영지, 작은딸 민혜, 막둥이 준용아~
아버지는 너희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주길 바라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베풀면서 살거라. 사랑한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 소망하는 일이 있다면?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저의 세무사라는 직업을 살려 정치 활동에 힘쓰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세무사는 회사나 기관의 재정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집행되는지 방향을 확인하는 일을 하는데, 정치에 있어서 세무사는 세금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어떤 정책효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아버지의 인터뷰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온화하지만 독수리처럼 강인하고, 우리들 눈에 늘 멋있고 빛나 보이는 아버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늘 멋있었고 아버지가 선택한 일은 이유가 있을 거란 믿음과 존경이 있었어요. 항상 바쁘셨지만, 아버지의 눈동자는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늘 지켜봐 주셨죠.

그리고 우리들의 성격과 특성을 잘 보시고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저희는 매순간 힘들어 주저앉기보다는 우리가 부모님을 위해 해드릴 수 있는 큰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우리에게 어떤 고난과 역경이 생기더라도 이겨내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끈기와 포기하지 않는 추진력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훌륭한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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